카타르 전에서 본 대표팀의 약점

이천수와 유상철의 해설을 괜찮게 들었습니다. (이천수의 애국 해설이 좀 거술리기는 했지만;)

말을 조심스럽게 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포인트들을 잘 집어주더군요.

특히나, 전반 30분 이후부터 두 사람의 멘트가 흥미로웠습니다.

"기성용과 구자철이 미드필드에서 강약 조절을 조금 해줄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상대 공격의 첫번째 라인에서 지금 엄청 많은 수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조율을 해준다고 하면 조금 더 좋은 공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상철)

"(우리) 선수들이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큰) 플레이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러나 침착히 미드필드 지역에서 강약을 조절하면서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천수)

"한번에 상대를 두드리려고 하면 굉장히 힘들어질 수 있어요. 차근차근 상대를 짓밟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이 공격 활로를 찾는데 도움이 됩니다." (유상철)

"지금 (카타르는) 중동 특유의 선수비 후공격의 형태를 이루고 있거든요. 이랬을 때는 (우리가) 한번에 큰 긴 패스를 통해서 공격을 하다가 보면 상대에게 역습의 기회를 줄 수 있어요." (이천수)

"우리 선수들이 지금 득점이 안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초조하고 급하게 경기 운영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안 그래도 돼요." (유상철)

동점에서 역전되는 과정의 경기 양상의 문제를 전직 두 대표 선수가 줄기차게 같은 지적을 했는데, 좀 더 설명하면...

동점 이후 기세가 오른 카타르 공격진이 활동량을 늘리며 우리 수비-미드필드에 대한 압박을 세게 나옴.

-> 그러자, 상대 압박에 시달린 우리 미드필드진은 흥분해서 큰 패스, 즉 뻥볼 날리기에 급급함.

(이천수가 큰 패스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뻥볼 날려서 소유권 내주는 기성용;;)

-> 그러나 이런 롱볼은 뒤로 빠져서 대비하고 있는 카타르 수비진에게는 아주 편하게 해주는 것이며 역습의 시발이 될 뿐.

-> 후반 되면 카타르의 페이스 떨어질 테니까, 일단 지금은 템포를 늦추면서 팀을 정비할 타이밍임.

결국, 이런 패턴이 한 20분 가량 지속되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이천수가 말했던 바로 저 패턴 그대로 역습 먹고 역전골을 내주죠.

뭐 경기는 후반 김신욱이 들어오고 전반에 오버런했던 카타르 공격진이 주춤하면서 뒤집어졌지만서도..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런 대목이 지금 대표팀의 약점이라고 봅니다.

경기 흐름을 읽고 거기에 맞게 팀의 플레이 변화를 주도적으로 리드해가는 그런 선수가 없어요.

과거 대표팀에는 그날 해설을 맡았던 유상철와 홍명보 등이, 그리고 이후에는 박지성, 이영표 등이 이런 역할을 하면서

경기의 고비마다 부딪힐지 버틸지, 빠르게 갈지 늦출지 등등의 판단을 이끌었는데, 지금은 그런 중량감있는 묵직한 리더가 없더군요.

이처럼 리더가 없는 팀은 고비에 약하고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죠.

그러다 보니, 대체로 심리적 압박감이 높은 경기에 약하고, 경기에 들어가서도 뒷심이 약하고...

카타르 전은 다행히도 그런 모습이 전반전에 나와서 하프타임에 한번 정비가 가능했었죠. (홍정호의 자폭 덕에 한번 더 고비가 있었지만;;)

중국 전에서도 후반에 한번 무너지니까 정신을 못차리는 모습을 보였었고..

사실, 이런 부분은 팀을 만들어가는 초기부터 일찌감치 고려됐어야 하는 문제인데,

월드컵 최종 예선이 한창 진행중인 지금 이 타이밍에서는 사실 답이 없죠.

덕분에 이번 최종 예선은 한 경기 안에서도 경기력이 널뛰기를 하면서 X줄 좀 태우는 양상으로 진행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