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 - 어느 사랑의 연대기//여자 친구들

나는 이제까지 그를 12번 만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1912년에 출생하여 2007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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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욕망>을 보았다라는 말은 확실히 <구름 저편에>나 <보디 우먼>과는 다른 의미다.

90년대 비디오 시장에서 깐느의 영예를 얻은 작품들이 다수 출시되기는 했지만,

그것들 중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국내 씨네필에게 내던진듯한 수수께끼같은 <욕망>은

제목 그대로  영화 리뷰를 쓰고 싶게하는 욕망을 '확대 Blow-Up'시키는 작품이었다.

​물론, <욕망>은 그의 모던 시네마의 황량한 한 시기가 지난 이후에 도착한 정제된 예술 영화의 상업성마저

은근슬쩍 우러나오는 삶의 전후좌우 고립의 전형을 제시한 작품이기도 했기에 화두로서 활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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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3부작에서 모던 시네마가 시작되었다면

후배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이를 하나의 조류이자 영원한 테제로 지속시켰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현대 영화가 미학적이 아닌 사회적인 이유로 환영받아야할 이유가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전대의 공동체가 불가능하다라는 핵폭탄과 아우슈비츠 이후의 선언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아닌 인간에게서 더 이상 관계로서의 間이 불가능하고 그들은 정답은 물론, 해답을 폐기했다.​

​여기서 그들이란 1940년대 이후 모던 시네마 이후 현재까지 순류역류하는 영화의 화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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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도저히 허가될 수 없는 실종의 내러티브와 캐릭터의 감독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라면

꺼꾸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에게 할리우드의 완제품은 자기 회피와 가학의 환타지로의 충직함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마약으로의 복속만큼이나 모던 시네마 역시 자기 안정으로의 70년대 이후를 기약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여전히 <욕망>의 21세기판본들과 접속하고 있지만, 꺼꾸로 공동체의 기억에 대한 희구 역시 달성하지 못했다.

영원히 길을 찾지 못하는 유령의 여정이라는 미혹이 아직도 당신 곁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무책임일까.

미학의 정당성과 윤리의 지향성 사이에서 모던 시네마의 시초로서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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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사랑의 연대기 Cronaca Di Un Amore (1950) : 그녀는 치정이 아닌 의상에 묻혔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출발로서의 40년대 초중반의 단편 다큐들을 지금 접할 경로는 없다.

극영화 장편으로서의 출발점인 본편이 독자가 그의 태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 현재의 한계다.

흔하디 흔한 장르로서의 치정 스릴러를 예상한 이들에게 본편은 적잖이 당혹을 안겨준다.

사고도 죽음도 빠지지 않고 제시되지만 그 곳으로 향하는 장르적 속도감은 미로 속의 방랑자와 동격이다.

 

모던 시네마 자체에서 내러티브란 그 자신의 활력이 불필요한 일종의 맥거핀이다.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 사건이 등장하지만 본령은 그들에게 내외적인 길이 없다는 증명에 있다면

본편 속 남녀 주인공의 불륜과 음모의 극적 생명력이 부실한 것에 대한 모함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장르적으로도 치정 스릴러는 결국 남녀의 욕망 안에서 본래적으로 희구했던 현실에의 도피가

어떻게 최종적인 추락으로 귀결되는가에 대한 오래된 테제(1946년작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라면

본편은 동시대 할리우드의 장르의 성취에서 흥행적 요소를 탈색시키고

그들이 불륜이 열정인지 기획인지조차도 모호하게 파편화시키는 편집에 집중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본편의 외적인 오프닝 수사법이 탐정물의 형식이기에 초반부 독자는 익숙한 필름 느와르의 중계물을 기대하지만

​영화는 8년 후 제작된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긴박함 따위는 애시당초 염두에 두지 않은듯이

탐정의 손길을 중요 정보를 제시하는 정도에서 제한시키면서 ​결말부를 질주시키는 기폭제로만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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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남녀 주인공은 그들이 대체 어떤 음모를 공모했는지조차 독자에게 정보를 줄 의향이 전혀 없다.

차라리 그들의 남편 살해 음모는 환타지 자체였거나 일종의 윤리적 형벌로서 기능할 수 있었음에도

영화는 남편의 자동차 사고사로 인해 완전한 이별로 장식되는 대미에서도 어떤 방향으로의 해제도 제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러티브의 장르적 불만은 왜 그들은 처음부터 살해를 기획하지 않는가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불륜 그 자체에서조차 행복했는지 모호한 데 이에 대한 장식적 해답은

여주인공이 화려하게 장식하는 50년대 이탈리아의 의상에서도 모자 착용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엔딩에서의 위 장면에서 어색하게 놓인 화살표와 구형 장식물 사이의 드레스로 종결된다.

​화려할수록 고립된다는 모순 어법의 고전적 기호성은 본편과 후작인 <여자 친구들>에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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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적 불안으로서 여주인공 파올라가 왜 부유한 기업가인 남편보다는 볼품없는 하층민인

옛 애인에게 매력을 느끼는가의 모호함도 본편의 주요한 불가해한 요소가 된다.

영화는 ​그들이 과거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사고사에 관련된 서신을 제출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파올라가 왜 부르조아의 도덕적 타락의 표면이 되어야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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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확장하자면, 기업가 판타나의 개인적 윤리를 저해할만한 요소를 본편은 내세우지 않는다.

​장르물이라면 그는 노쇠 혹은 추악한 물욕 등으로 인해 손쉽게 제거되어야할 표피적 요소가 드러나야하는데

본편에서 기업가 폰타나는 비록 과거사를 추적해달라는 의뢰는 하지만,

파올라에게 어떠한 위해적 수사도 품고 있지 않음을 극은 고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파올라와 옛 애인 귀도의 불륜에 대해서 그는 인지하지도 못하고 옛 사건의 치부를 보고서를 통해 짐작했다해도

그 자체가 자신의 자동차 고속질주로의 죽음으로 이어질만한 충격이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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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론하자면 본편의 유일한 형식은 차라리 모호함과 불균질함으로 빚어지는 실종 그자체라고 하겠다.

과거의 모호한 사고사의 방치가 있고, 현재의 불륜이 있지만 그것이 미래의 망연자실로 확정될 때

영화는 남겨진 여인 파올라나 경찰서로 왜 가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귀도의 결정 자체에서 우울함만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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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시간 안에서 부르조아라는 한산한 계급성이 다소 가볍게 치부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과 더불어 상류층만을 위한 소수 패션쇼의 화려함과 최고급 자동차의 속도감이 중반을 책임지는 순간에도

파올라와 귀도의 불륜은 자유와 부유함 사이를 지루하게 오가기만 할 뿐, 사건으로 고조되기를 지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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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질문은 엔딩의 현명함으로 도착하는데, 음모의 실현이 아닌 남편의 사고사는

그들의 계획 자체가 무의미하며 어느 방향으로든 그들은 이미 패망했다는 판관의 윤리를 선보인다.

이에 대한 동의와 지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가능하지만, 그 결정을 파올라가 아닌 귀도가 했다는 점만은 의미심장하다.

​독자로서는 다소 윤리적인 엔딩이 환타지로 작용할 여지도 없지 않지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50년대의 출발점에서 혹은 장편 극영화 데뷔로서의 결정은 자못 웅장하게도 의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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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랑의 연대기>는 ​성공할 수 없는 불륜극의 태생적 한계에 대한 불친절한 기획 제출안이며

부르조아의 우울함의 정체성을 삭제한 자리에 하층민의 윤리를 선택한 화려한 내면 의상극이다. ​

 

2. 여자 친구들 Le Amiche (1955) : 관계로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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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50대 여성 3부작으로 호명될 정도이니,

극의 구성과 인물, 서사의 동어반복은 이미 예상한 바와 같다.

특히, 거의 노골적으로 무대화된 부르조아 여성들의 소규모 패션쇼는 추정되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어두운 내면과 관계를 위장시키는 화려함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는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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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혹은 4명의 여인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호명할 수 없다라는 것이 본편의 외투라면

그들 중 기실 욕망에 충실한 마리엘라를 제외하거나 일종의 중심 안내자인 클레리아를 열외로 두려는

관계 자체의 헐거움 자체가 이같은 외투의 내피 옷감의 소재라고 해두자.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에게 친구라는 관계 자체는 기호와 의미 사이의 필연성을 구축할 수 없다.

가족이나 동지라는 공동체 의식 아래에서 가능한 기존 체제의 치료를 담당하는 친구라는 어감에 대해서

의리나 배신 등의 가열찬 혹은 ​가혹한 의제를 비평했던 무수한 영화들과 본편은 결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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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이 일회성 주거지인 호텔에서의 자살 시도로 이어지고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하려는 로제타의 상태를 경찰에 신고한 클레리아가

현장을 방문한 모미나와 만난 이후 나머지 4명과 순조롭게 친분을 맺으면서 내뱉는

"마치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람들같아"라는 대사에서 극의 골격의 반어법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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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극의 성별 이분법이다.

5인의 여성을 둘러싼 사내들은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패배자로 호명될 정도로

부르조아 여성들이란 신분과는 다소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그나마 캐릭터화되는 인물은 두엇 뿐이다.

주인공 클레리아가 자살 현장인 호텔​에서 곧바로 디자이너샵 공사현장으로 가서 만나는

건설 현장 잡부 중 한 명인 카를로와 연인 관계를 잠시 유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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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작 <어느 사랑의 연대기>에서도 이어지는 면모인데,

남자들은 기업가이거나 성공적이지 못한 삶을 영위 중인 패배자로서 여성들과 관계맺는다.

그로부터 불륜이든 연애든간에 일회성이거나 불구적인 관계가 지배적이 됨은 피할 수 없게된다. ​

이로 인해 ​우정과 이해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제기가 사건화되고 추락의 난제가 됨 역시 명약관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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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로 떠난 소풍 시퀀스에서 위 장면에서 보다시피 친구 5명은 서로 떨어져있다.

그들이 바닷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머리가 날리는 장면은 낭만과 환희의 젊음의 장소가 아니라

일회적인 입맞춤이 횡행하고 ​손찌김이 불거지는 황량한 사막과도 같은 곳이다.

독자는 여기서 감독의 후작인 <정사>와 <붉은 사막>을 미리 연상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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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내에서 그나마 위안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기차 안에서의 두 여성의 대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이후 해안 소풍에서 이탈한 로제타를 위로하기 위해 동승한

클레리아의 입장은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 달리 오래된 친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외이지만,

그보다 그들이 기차 통로를 걸을 때 그들 곁에 수녀와 소​년들이 보인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적극적으로 의미 확장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이나 동심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못한 이들의 면모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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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영화가 본격적으로 4명 혹은 3명의 여성이 남성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서사가 확장될 때

독자는 그것이 다소 상투적이면서 동시에 작위적이라는 분위기를 떨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남녀의 경졔 계급적 차이를 과시하는 목적을 버리려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나는 끼니가 준비되었다'라는 대사를 통해 부르조아의 윤리를 표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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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 다시 문제는 이들 여성의 연적 관계로 인한 혹은 패배자 남성의 서투르고 무기력한 대응으로 인한

로제타의 자살과 네네의 순응, 모미나의 건조한 시선, 마리엘라의 배타적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에 있다.

그녀들의 관계의 부실함은 왜 우정을 넘어 연대의 자리로 옮겨가지 못하는가에 대해 영화는 무관심하다.

만일 부르조아 페미니스트의 입장이라면 그다지 환영받을만한 서사 구조라고 할 수 없을 얼개를 노정한다.

그나마, 네네는 로제타에게 양보하려는 일련의 태도를 보였고, 뒤늦게 친구로 합류한 클레리아는 통곡하지만,

영화가 그들에게도 다소 냉정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엔딩을 추가한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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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의 현명한 태도는 장소의 정치성에서 드러난다.

극의 주요한 무대인 디자이너 샵의 소규모 패션쇼에서 주연인 디자이너인 클레리아가

로제타의 자살 소식으로 인해 폭발하는 것 자체가 당연한 수순이라면

또다른 실질적인 일회성이라는 기호의 담당자인 호텔에서의 반전으로서의 클레리아의 직업-계급적 수습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감독이 예비한 씁쓸한 뒷맛으로 인해 다시 한번 관계의 개념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굳이 여기에 노동자 계급 카를로와의 기차역에서의 재회 불발을 추가한 것은 상업적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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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들>은 ​불륜에서 우정으로 호명을 달리한 관계의 불구성에 대한 여인 연작이며

여전히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된 그녀들의 부르조아적 음울함을 남성 패배성과 대비 정주행하는 파계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