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차량의 '지렁이' 는 왜 있는 건가? (군용 차량 위장 패턴의 비밀)

골든스테이트 2017-10-21 (토) 18:33 조회 : 9255 추천 : 3

한국군 차량의 ‘지렁이’는 왜 있는 건가?

한국군의 K2 전차. 차체에는 전통의 흰지렁이와 검은 지렁이가 도색되어 있다.

군대에서 차량을 다루는 병과를 나오신 분, 혹은 한국군 차량의 프라모델을 만드는 분이라면 차량, 또는 그 차량을 작게 축소한 프라모델을 색칠하면서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 봤을 것이다.

“아니, 도대체 왜 군용 차량에 하얀 지렁이 모양의 위장무늬를 넣지? 눈에 잘 띄게 말이야… 그리고 그 옆에는 꼭 검은색 지렁이 모양의 위장무늬를 같이 넣어야 하잖아. 이거 꽤나 번거롭네. 도대체 이런 거 왜 칠하는 거지? 귀찮게 말이야…”

한국군 차량 위장무늬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흰색과 검은색의 ‘지렁이(혹자는 나뭇가지라고도 부른다)’ 모양 위장무늬. 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번거로운 일이라 짜증이 날만도 하지만 그게 왜 들어가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군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이것도 ‘미군들 하는 것 따라한 것’ 정도로 일축해 버리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미군의 영향으로 들어간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미군들이 ‘하필이면 왜’ 지렁이 무늬를 넣었는지 그 과학적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 칼럼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한국군 차량의 위장 패턴의 원조는 지난 1970년대 미군의 기동장비 연구개발 사령부(약칭 MERDC)에서 내 놓은 MERDC 위장 패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미군의 차량은 올리브 황갈색 단색 일색이었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에 들어와서도 모든 지형에 다 걸맞는 위장패턴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올리브 황갈색 단색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전 세계의 다양한 지형을 누비는 미군의 차량을 효과적으로 위장시켜 줄 턱이 없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야시장비의 일반화가 시작된 베트남 전쟁 때부터 크게 불거지기 시작했다. 광증폭식 야시장비를 사용하면 야간에도 명암의 구분이 가능한 판에, 올리브 드라브 단색 위장은 너무나도 위장효과가 모자랐던 것이다.

따라서 MERDC는 주야간 모두 높은 위장효과를 발휘하는 위장패턴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두 가지 위장색을 비교적 균등한 면적과 모양으로 배치하고, 두 위장색의 경계면에 밝은 모래색과 검은색의 지렁이 무늬를 배치하는 패턴이었다. 또한 위장색은 차량이 활동하는 지형에 맞게 12가지 색상 중에서 지휘관 재량으로 고를 수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이 중 미국과 유럽대륙의 동계 삼림지대용으로 나온 패턴, 즉 황갈색과 녹색의 두 위장색 위에 밝은 모래색과 검은색의 지렁이 무늬를 배치하는 패턴이 바로 한국군 위장무늬의 원조가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국군 위장무늬가 미군 것을 따라한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미군은 어떤 과학적인 근거로 지렁이 무늬를 넣은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위장효과를 높이는 대비효과(contrast)에 있다. 앞서 다른 칼럼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군대에서 위장을 실시하는 목적은 우선 주변의 지형지물에 녹아들어 적의 시각 관측을 피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로는 설령 시각 관측을 당하더라도 크기와 진행방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해 적이 제대로 조준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위장을 실시하는 물체의 윤곽선을 적이 빨리 알아보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채도와 명도, 색상이 대비되는 두 가지 이상의 색상을 사용해 위장무늬를 그림으로서, 위장색들 간에 차이가 느껴지게 해 물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윤곽선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전함 비스마르크.

흰 줄무늬와 검은 줄무늬를 함께 그려넣어 선체의 윤곽선을 망가뜨리려 시도했다.

그런데, MERDC에 들어가는 밝은 모래색(사실상 흰색에 가까운)과 검은색의 지렁이 콤비야 말로 이러한 대비, 특히 명도 대비가 극대화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지렁이 콤비는 서로 또 붙어 있는 탓에, 검은 색은 아주 검게, 밝은 모래색은 흰색에 가깝게 보일 정도다. 그리고 이들을 기본으로 칠해진 두 위장색의 경계에 배치함으로서, 두 위장색 간의 대비를 더욱 극대화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위장이 실시되는 차량의 윤곽선을 크게 망가뜨리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렇게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를 매우 가까이 배치해, 같은 효과를 노리는 방식은 비단 미군이나 한국군 외에도 다른 나라 군대의 위장에서도 볼 수 있다. 과거 전함의 위장도색이나, 베트남의 타이거 스트라이프 위장복에서도 같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왜 21세기 현대의 미군 차량에서는 이런 지렁이 무늬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까? 아닌게 아니라 한국군도 K1A1 전차나 K2 전차같은 신형전차의 포탑 부분에는 더 이상 ‘흰 지렁이’는 그리지 않는다.

미군은 1980년대 후반부터 MERDC 패턴을 버리고, 녹색, 갈색, 흑색의 3가지 색이 각각 균등한 비율을 차지하는 나토 공용 3색 위장무늬를 채택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우선 광증폭식 야시장비와는 달리 가시광선에 의존하지 않는 적외선식 야시장비가 대량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적외선식 야시장비 앞에서 위장 도료의 색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지렁이 무늬를 그리는 대신 주변 환경과 적외선 방출량이 비슷한 특수도료를 쓰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는 또한 주간 관측 역시 감안한 조치이다. 인간의 눈은 흑색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흑색의 비중을 차량 전체 면적의 1/3까지로 과감히 늘린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군은 물론 나토군의 차량은 더욱 높은 위장효과를 갖게 되었다. 우리 역시 주적의 각종 관측장비 발달에 맞춰 새로운 위장무늬 도입을 검토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글: 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

출처: 사이언스올

http://www.scienceall.com/%ED%95%9C%EA%B5%AD%EA%B5%B0-%EC%B0%A8%EB%9F%89%EC%9D%98-%EC%A7%80%EB%A0%81%EC%9D%B4%EB%8A%94-%EC%99%9C-%EC%9E%88%EB%8A%94-%EA%B1%B4%EA%B0%80/